
신라가 한반도 남부를 통일한 시기, 북쪽의 만주 벌판과 한반도 북부에서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결합하여 세운 '발해'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발해는 국가적 차원에서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천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헌상의 기록을 넘어, 발해의 옛터에서 발굴되는 여러 건축 유적과 생활 유물을 통해 명확하게 교차 검증됩니다.
발해 사람들의 주거 문화를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유적은 '온돌'입니다. 만주 지역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발해인들은 아궁이에서 불을 때어 방바닥 밑으로 뜨거운 열기를 통과시키는 난방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고구려인들이 사용했던 '쪽구들(방의 일부분만 데우는 형태)'의 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입니다. 동시대 주변국이었던 당나라의 입식 생활이나 거란, 말갈의 주거 형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와 발해만의 독자적인 문화입니다. 온돌 유적의 존재는 발해의 핵심 계층이 고구려의 전통적인 생활 풍습을 일상생활 속에서 확고하게 유지했음을 증명하는 물리적 증거입니다.
또한,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 궁궐 터에서 출토된 '수막새(지붕 끝을 장식하는 기와)' 역시 고구려와의 짙은 문화적 연관성을 설명해 줍니다. 발해의 연꽃무늬 수막새는 선이 굵고 끝이 뾰족하며 매우 입체적이고 힘찬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양의 특징과 기와 제작 기법은 고구려 시대의 수막새 양식과 사실상 동일합니다.
발해는 도성의 전체적인 배치나 거대한 궁궐의 구조에 있어서는 당시 국제 규격이라 할 수 있는 당나라 장안성의 방식을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건물의 지붕을 덮는 기와의 양식이나 사람들이 매일 잠을 청하는 방바닥의 구조와 같은 실질적인 생활 공간에는 철저하게 고구려의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이처럼 온돌과 수막새는 북방의 거친 영토 위에서 옛 고구려의 정체성을 보존하며 자신들만의 문화를 구축했던 발해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흔적들은 발해가 우리 고대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역사적 지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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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5] 발해 온돌과 수막새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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